김원중 삼국지 관우전을 옮겨 적은 것인데 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건안5년 (200년) 조조가 동쪽 지역 정벌(서주)에 나서자 .유비는 원소에게 원군을 청하였지만 아들의 핑계를 대며 오지 않았다.그리고 원소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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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전의 원문을 보면【建安五年,曹公东征,先主奔袁绍。건안5년 조공이 동정을 하자 선주(유비)는 달아나 원소에게 갔다.】유비가 원소에게 원군을 청하거나 원소가 아들 핑계를 대고 원군을보내지 않았다는 부분은 나오지 않는다.
기전紀傳의 특성상 한 인물의 기전만으로 사건을 파악하기 어려울때는 다른기전을 통해서 사건에 접근해야하는데 혹시 번역자 께서도 그런 작업을 통해 사건관련 인물의 기전에서 ‘유비가 원소에게 원군을 청하고 원소가 그것을 거절한’ 사실을 발견하고 번역할 때 넣으신건가. 관우전에 나오는 내용대로 조조,유비,원소의 기전을 살펴보자.
【《三國志·魏書一·武帝紀》五年春正月,公將自東征備,諸將皆曰:“與公爭天下者,袁紹也。今紹方來而棄之東,紹乘人後,若何?”公曰:“夫劉備,人傑也,今不擊,必爲後患。袁紹雖有大志,而見事遲,必不動也。”郭嘉亦勸公,遂東擊備,破之,生禽其將夏侯博。備走奔紹,獲其妻子。備將關羽屯下邳,複進攻之,羽降。昌豨叛爲備,又攻破之。公還官渡,紹卒不出。공이 동정하여(서주의)유비를 치려하자 제장들이 모두 반대 하였다.「공과 천하를 다툴자는 원소입니다. 지금 원소와 대치중인 상황에 그것을 버려두고 동쪽을 치신다면 원소가 우리의 뒤를 노릴것입니다. 」조공이 말했다.「유비는 인걸이네. 지금 싹을 잘라버리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화가 될것이네. 그리고 원소는 야망은 크나 우유부단한자라 이것저것 재느라 제때에 움직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네. 」곽가 역시 동정 할것을 권하였다.마침내 동정을 개시해 유비의 처자와 유비의 부하장수 하후박을 사로잡았고 유비는 원소에게 달아났다. 하비에 주둔중이던 관우는 투항했고,유비 편에붙어 반란을 일으킨 창희도 진압했다 . 공이 다시 관도로 돌아올때까지 원소군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당시 조조는 관도에서 원소군과 대치중인 상황이 었다.
그래서 조조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서주의 유비를 치려하자 원소가 뒷치기 들어올것을 염려해 여러장수들이 반대에 나선것이다.
【《三國志·魏書六·董二袁劉傳》建安五年,太祖自東征備。田豐說紹襲太祖後,紹辭以子疾,不許,豐舉杖擊地曰:“夫遭難遇之機,而以嬰兒之病失其會,惜哉!”太祖至,擊破備;備奔紹。건안5년,태조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동쪽에 있는 유비를 정벌했다. 전풍이 태조의 뒤를 칠것을 권했지만 원소는 아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전풍은 지팡이를 들어 땅을 치며 탄식했다.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를 아이 병 때문에 놓치다니 애석하도다」태조가 (서주에)이르러 유비를 격파하고 유비는 원소에게 달아났다.】
원소가 아들 병을 이유로 군사를 움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풍이 군사를 움직이자고 한것은 (결과적으로 유비에게 원군이 될수도 있겠지만,) 적의 빈틈을 노리자는 것이 었지 유비를 돕자는 원군援軍의 성격은 아니었다. 그리고 유비가 원군을 청했다는 기록은 찾을수 없었다.
【《三國志·蜀書二·先主傳》五年,曹公東征先主,先主敗績。조공이 동쪽으로 쳐들어 왔다. 선주가 패했다.】
조조가 쳐들어 오고, 유비는 패했다는 짤막한 기사만 있다.
그러나 위 기사(五年,曹公東征先主,先主敗績) 배송지 주【《三國志·蜀書二·先主傳》魏書曰:是時,公方有急於官渡,乃分留諸將屯官渡,自勒精兵征備。備初謂公與大敵連,不得東,而候騎卒至,言曹公自來。備大驚,然猶未信。自將數十騎出望公軍,見麾旌,便棄眾而走。당시 관도의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터라 여러 장수를 관도에 남겨두고, 공(조조)이 친히 소수의 정예병을 이끌고 유비를 쳤다. 유비는 공(조조)이 큰적(원소가)과 맞서고 있는 상황이라 동쪽으로 쳐들어 올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척후병이 조공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왔다고 보고하자 유비는 깜짝 놀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친히 수십기를 이끌고 나가 멀리서 공(조조)의 군대가 이른것을 보고는 부하들을 버리고 달아 났다.】를 살펴보면 당시 유비는 조조가 쳐들어 올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조조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왔다는 첩보를 받고는 그냥 도망가 버렸다. 원군을 청하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유비가 원소에게 사신을 보낸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원군을 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조에 대항해 연합하자는 것이었으며 조조 동정 이전의 일이다. 유비가 서주자사 차주를 죽이고 조조에게 반기를 들자 여러 군현에서 유비에 호응해서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때 조조와 대치중이던 원소와 손잡기 위해 사신으로 손건을 보낸것이다. 【《三國志·蜀書二·先主傳》靈等還,先主乃殺徐州刺史車胄,留關羽守下邳,而身還小沛。東海昌霸反,郡縣多叛曹公爲先主,眾數萬人,遣孫乾與袁紹連和,曹公遣劉岱、王忠擊之,不克。五年,曹公東征先主,先主敗績。 】시간과 사신의 임무가 맞지 않는것이다.
그럼 도대체 ‘조조가 쳐들어 오자 유비가 원소에게 원군을 청했다’는 말은 어디에서 온것일까.설마 설마 하는 심정으로 찾아 봤는데 이럴수가 진짜 조조가 서주로 쳐들어오자 원소에게 원군을 청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遂起二十萬大軍,分兵五路下徐州。細作探知,報入徐州。孫乾先往下邳報知關公,隨至小沛報知玄德,玄德與孫乾計議曰:“此必求救於袁紹,方可解危。”於是玄德修書一封,遣孫乾至河北。乾乃先見田豐,具言其事,求其引進。드디어 20만 대군이 다섯갈래로 서주를 향했다. 세작이 그것을 탐지 하여 서주에 보고했다. 손건은 우선 하비의 관우에게 사실을 알리고, 다시 소패로가 유비에게 상황을 알리고 대책을 논의 했다. 원소에게 원군을 청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을것이라 여겨 손건을 사신으로 보냈다. 손건은 하북에 이르자 먼저 전풍을 찾아가 자세한 상황을 전했다.】
《三國演義· 第二十四回》그러니까 소설에 나오는 내용이다(http://www.guoxue.com/minqingstory/sgyy/SGYY_024.htm 세째단락). 이문열 삼국지4권 35~36페이지를 보면 확인 가능하다.
사실 김원중 삼국지가 삼국지 좋아 하는 분들 사이에서는 계륵鷄肋취급을 당하고 있다. 유일무이한 번역본이라 개무시 할 수는 없지만 여러곳에서 발견되는 오류들로 인해서 학생들이나 조교들에게 째기 번역을 시킨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책을 직접 읽지않고 ‘이상한 부분에 대해’ 뭐라 말할지 못하겠고, 또 소설 내용을 슬쩍 집어 넣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마 인터넷에 글을 옮기는 과정에 옮긴이 께서 본인이 알고 있던 것과 혼동하여 첨가 된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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